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사귐이란 뜻으로, 관중과 포숙아처럼 변하지 않는 친구 사이의 두터운 우정, 친구를 무조건 위하는 두터운 우정을 이르는 말이다.
관중과 포숙아는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 사람으로 둘은 죽마고우였다.
관중은 젊었을 때에 집이 가난하여 포숙아와 함께 장사를 했는데 언제나 돈을 많이 가져갔다. 그러나 포숙아는 이를 알고도 관중을 탓하지 않았다. 관중이 가난하고 생활이 어려워서 그러는 것이라고 이해해주었다.
관중이 벼슬을 하려다가 세 번이나 실패했어도 포숙아는 타박하지 않고 말하기를 “자네는 시운(일정한 시대의 운수)을 타지 못한 것뿐이야!”라고 위로하였다.
관중과 포숙아가 전쟁터에 나갔을 때 관중은 항상 맨 뒤에 섰고, 싸우면서도 세 번이나 도망을 쳤다. 모두가 관중을 비난할 때도 포숙아는 관중이 홀어머니를 모셔야 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 무렵 제나라에서는 소백(小白)과 규(糾)라는 두 왕자 사이에 정권 다툼이 있었다. 그런데 운명적으로 관중은 규의 밑에 들어가 일했고, 포숙아는 소백을 섬기고 있었다. 두 왕자가 싸움을 벌이는 통에, 관중과 포숙아는 어쩔 수 없이 적이 되었다. 후에 소백이 그 싸움에 이겨서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환공(桓公)이다.
환공은 자기를 죽이려고 한 관중을 잡아들여 당장 사형에 처하라고 했다. 그때 포숙아가 목숨을 걸고 나서서 환공을 말렸다. "왕께서는 제나라 하나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臣)으로도 충분할 것이나, 천하의 패자가 되시려면 관중을 기용하십시오." 포숙아는 관중은 유능한 인재이니 절대 죽이지 말고 오히려 재상의 자리에 임명해달라고 간청했다.
도량이 넓고 식견이 높은 환공은 신뢰하는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중용하고 정사를 맡겼다. 그렇게 포숙아는 자기가 차지할 수 있었던 재상의 자리를 관중에게 양보했다. 훗날 관중은 죽마고우인 포숙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이렇게 말했다.
“진실로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아라고 할 수 있다”
후세 사람들은 이러한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을 일컬어 관포지교라 하며 칭찬해 마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