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다니던 길은 캄캄한 밤이라도 등불 없이 짐작으로 갈수 있으나, 칠흙 같이 어두운 밤에 처음 가는 초행길을 등불 없이 가기는 어렵습니다.
이와 같이 알고 저지른 잘못은 그나마 죄가 된다는 것을 미리 알기 때문에 작은 조심이라도 하게 되지만, 전혀 모르고 저지른 죄는 그 죄값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크게 낭패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에 부처님의 가르침인 공(空)의 도리와 인과(因果)의 법칙을 미리 알고 살아간다면, 왠만한 일에는 자업자득(自業自得-내가 짓고 내가 받는)의 결과를 스스로 잘 받아들여 마음 고생을 덜 하게 되지만, 이를 알지 못하면 작은 불이익이나, 불행에 있어서도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여 크게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어떤 경우에든 분별의 마음을 가지면 그 인과로 인하여 늘 과보(果報)를 받아 괴로움을 당하게 되니, 항상 좋다 나쁘다 라고 하는 시비 분별심(分別心)을 갖지 말고 “이런 일이 있구나, 저런 일도 있구나” 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를 꼭 가져야 합니다.
해가 뜨면 그 해가 지지 않고는 다시 뜰 수 없듯이, 생겨난 것은 생로병사(生老病死)하고, 생주이멸하고, 성주괴공(成住壞空)하여 반드시 늙고 병들어 허물어지고 파괴되어 죽거나 사라지는 법이어서, 좋은 것이 생기면 필연코 좋지 않은 것이 되어 사라지고 만다는 이치를 잘 알아 대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을 좋은 것이라고 하여 들뜬 마음을 가지지 말고 의연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며, 좋지 않은 것 또한 좋지 않은 것이라고 분별하지 말고 여여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니, 결국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 둘 모두 생겨나지 않게 되므로, 늘 편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생활 속에서 온갖 일들이 벌어지더라도, 이 모든 일들은 나의 분별심(分別心)에 의해 자업자득(自業自得)의 결과로 다가온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여서, 옳다 그르다 시비(是非)하지 않고, 좋다 나쁘다 분별하지 않는 습관을 들임으로써,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방지하고, 성내고 화나는 마음을 잠재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설사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더라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 즉시 나의 분별심 때문에 인과(因果)의 과보(果報)가 나타난 것이라고 재빨리 자각하여, 더 이상의 업을 짓는 일이 없어야 다음의 과보가 생기지 않게 된다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때문에, 기도로서 분별심을 없애고, 참선으로써 분별심을 잠재우며, 보시로서 분별심을 비워 내고, 정진으로서 분별심을 사라지게 해야 하겠습니다.
기도, 참선, 보시, 정진 이 모두의 근원적인 출발은 지극한 참회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또다시 당부드립니다.
자명스님(기원정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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