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중국의 '사언'이라는 스님은, 세속의 욕망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현실의 자아와 그것을 억제하려는 마음속 깊은 곳의 자기와의 대화를 통해 정진했다고 합니다.
욕망에 굴복하려는 자신과 욕망을 억제하려는 자기 사이에서 치열하게 논쟁을 했던 것입니다.
스님은 깊은 곳의 자기를 '주인공'이라고 부르기로 하고, 매일 좌선을 하면서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을 “주인공아”라고 부르고, 자신이 대신해서 “예!”하고 대답을 하면서 대화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깨어 있어야 한다!”, “예”
“남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 “예”라고 말했습니다.
'주인공'하고 부르는 것도 자신이었고 '예'하고 대답하는 것도 같은 자신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는 평범한 사람인 범부중생과 궁극의 향상처인 부처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이를 두고 불범동거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 사실을 느낄 줄 모르는 현대인은 감각적인 생활로 방황하며 자신은 고독하다고 그릇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단절을 탄식하기에 앞서 먼저 자기 자신과 만나는 기회를 자신이 자청해서 피하고 있다는 사실, 그 어리석음을 슬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스스로의 의지로서 노에가 아닌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깨달음의 희열 속에서 사는 것이고, 열반의 삶이 될 것입니다.
주인이 되었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내 자신이 가진 잠재성을 활짝 꽃피우면서 살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라는 것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 흘러 넘쳐 타인도 같이 사랑하는 일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 수가 없고,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삶에서 엑스트라나 조연이 될 수 밖에 없으니 자신의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기에 괴로움에서 벗어날 길도 멀어지게 되는 것이고요.
오늘 하루, 자기 생의 주인공이 되어 어제보다 더 가뿐하고, 더 당당하고, 더욱 긍지 가득한 현재를 보내야 할 것입니다.
자명스님(기원정사 주지)